[할 말 있습니다-③생활화학제품 소비자]정부 책임 빠진 구제법…고통은 10년째, 피해 판정은 18%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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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 있습니다-③생활화학제품 소비자]정부 책임 빠진 구제법…고통은 10년째, 피해 판정은 18%뿐

최예용 0 4264
[할 말 있습니다-③생활화학제품 소비자]정부 책임 빠진 구제법…고통은 10년째, 피해 판정은 18%뿐


경향 2017 4 8 


ㆍ우리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앞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올 들어 첫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앞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올 들어 첫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고통 어린 호소가 시작된 지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피해자 조사·판정부터 피해 인정 범위, 피해자 구제까지 어느 것 하나도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줄 정도로는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집중 부각된 후 실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지난 3월 태아 피해 가능성을 인정한 것 정도라고 지적한다. 환경부는 지난달 27일 열린 제21차 환경보건위원회에서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산모의 태아 피해를 인정하고, 정부가 의료비·장례비 등을 지원키로 했다. 진일보한 내용이지만 태아 피해 가능성이 지난해 5월 처음 제기된 것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늦은 조치라는 비판이 따라붙는다. 

정부는 여전히 폐섬유화 이외 질환자는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학계에서 가습기 살균제의 유독 성분이 폐렴·천식은 물론 뇌질환 등 다양한 질환을 유발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지만 실제 판정기준엔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메틸클로로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 피해자들이 대표적이다. 환경부는 이 물질의 유독성이 밝혀진 지 4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연구 중이라는 입장만 내세우고 있다. 현재까지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의 대부분은 가장 큰 피해를 일으킨 옥시레킷벤키저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 포함됐던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에 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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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은 거리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족 모임과 환경단체 등으로 이뤄진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옥시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기업들의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옥시 등 가해 기업이 검찰 수사를 피하고 재판 형량을 낮추기 위한 꼼수만 부릴 뿐 진정성 있는 사과는 전무한 상태”라며 “옥시를 포함한 가해 기업 임원 몇몇이 처벌받게 됐지만 1168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만든 사건치고는 검찰 수사와 정부의 진상조사가 극히 미흡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환경단체와 피해자들이 꼽는 성과 중 하나는 지난 1월 국회에서 통과된 피해자구제법이다. 하지만 이 법 역시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의 책임을 규정하는 내용이 빠져 피해구제기금에 정부 기금이 포함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가해 기업들만 출연하도록 한 규정과 상한선을 2000억원으로 제한한 것도 논란 지점이다. 6일 국회에서 열린 ‘피해자구제법 개정 간담회’에서는 구제기금의 상한선을 폐지할 것과 소급적용 한도를 현재의 20년에서 제품 판매기간 전체인 1994년부터 2011년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의 피해자 조사·판정 작업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현재까지 정부에 피해 사실을 접수한 피해자 5531명 중 판정받은 이는 982명(17.8%)에 불과하다. 그나마 정부의 일시적 지원 대상이 되는 1단계(거의 확실)·2단계(가능성 높음) 피해자는 각각 179명과 97명뿐이다. 3단계(가능성 낮음), 4단계(가능성 거의 없음), 판정 불가 결과를 통보받은 피해자들은 정부로부터도 외면당하면서 더 큰 고통에 빠져 있다. 

정부가 올해 안에 마치겠다고 한 피해자 판정 작업도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태다. 환경부는 지난해 8월 연 광역시·도의 생활화학제품 관계 과장단 회의에서 피해 판정 시기를 앞당길 수 있는 시·도 제안을 거절했다. 서울시를 포함한 다수의 시·도 과장들이 시립·도립병원에서 피해자 조사·판정 작업을 돕겠다고 했으나 고개를 저은 것이다. 판정기준이 들쭉날쭉해질 수 있고, 시·도에서 피해 보상 판정을 받은 이들이 환경부에선 인정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현재는 민간병원들이 조사·판정 작업을 맡고 있는데 국가적인 참사로 피해를 입은 이들의 의료정보를 민간병원이 전담 관리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며 “국립병원이 컨트롤타워가 되고 각 지역의 시립·도립 병원들이 중추가 되어 조사·판정 작업을 실시하고 민간병원이 돕는 체계를 지금이라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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