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3배’ 손해배상 과연 효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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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3배’ 손해배상 과연 효과 있을까

최예용 0 3339

 

징벌적 ‘3배’ 손해배상 과연 효과 있을까

경향 2017 4 1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5월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옥시레킷벤키저 제품 불매운동을 선언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5월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옥시레킷벤키저 제품 불매운동을 선언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 국회 통과… “징벌 배상규모 너무 낮아” 회의적

 

 

제조물 결함으로 인한 피해 발생 시 기업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이 3월 30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당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법안이 계류돼 3월 내 통과가 불확실했지만 4당 원내대표가 막판 합의를 이뤄내며 전격적으로 법안이 마련됐다. 

 

배상금의 최대 3배 ‘징벌적’ 배상

개별 법률에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된 게 처음은 아니지만, 제조물 책임법의 경우 적용받는 대상 기업 및 소비자가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도입 여부가 큰 관심을 모아 왔다. 특히 수백명에 달하는 피해자를 양산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계기로 기업의 부도덕한 영업행태를 바로잡고, 피해자들이 최소한의 합당한 배상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제조물 책임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돼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정치권이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을 전격적인 합의를 통해 처리한 것은 이 같은 국민들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는 제조물 책임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된 것에는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배상금 규모가 너무 작다는 이유 등을 들어 실효성에는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제도가 활성화돼 피해자들을 구제하고 기업의 불법행위를 예방하려면 배상액 상향, 집단소송제 도입 등 관련 법 규제를 함께 개선해나가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기존 손해배상 조항에 사안에 따라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추가하고, 피해의 입증책임 일부를 기업에 두도록 한 것이 이번 개정안의 핵심이다. 제조물 책임법 제3조 제1항에서는 ‘제조업자는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를 입은 자에게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에서는 기존법의 제2항을 제3항으로 수정하고, 제2항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신설해 명시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신체와 관련된 피해가 발생했고, 기업에는 피해를 방조한 ‘고의성’이 있는 경우에 적용된다. 신설된 제2항에서는 ‘제1항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자가 제조물의 결함을 알면서도 그 결함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입은 자가 있는 경우 손해의 3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진다’고 규정했다.  

관건인 배상액 규모의 경우 법원이 기업 고의성의 정도, 결함으로 발생한 손해의 정도 등을 고려해 정하도록 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해 “이중처벌 우려가 있다”는 반론이 있는 만큼 제조업자가 받은 형사처벌이나 행정처분 정도도 배상액 산정 시 감안토록 했다. 이밖에도 해당 제조물이 판매된 기간 및 이로 인해 취득한 경제적 이익 규모, 제조업자의 재산상태, 제조업자가 피해구제를 위해 노력한 정도 등도 고려대상이다. 이 중 특히 ‘고의성 정도’나 ‘피해구제 노력’ 등은 객관적으로 수치화되는 자료도 아니고, 이해당사자 간 입장도 엇갈릴 수 있는 부분인 탓에 배상액 산정 과정에서 제조업자와 피해자 간 치열한 법리다툼이 예상된다.  

법적으로 제조물 책임법은 제조업자뿐 아니라 제조물 가공업자, 수입업자에게도 모두 적용된다. 다만 이번 개정안은 제조업자를 대변하는 중소기업중앙회의 요청으로 공포 후 법률이 시행되기까지 유예기간이 기존 6개월에서 1년으로 늘었다. 제조물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받는 시점 역시 법이 시행된 이후 공급되는 제조물에 한한다. 이를 감안하면 제조물 책임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의 실질적인 적용 시점은 2018년 4월 이후부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개정안에서는 제조물 관련 손해배상의 최대 쟁점 중 하나인 ‘피해 입증책임’의 일부를 기업이 지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피해 당사자가 손해 여부는 물론 제조물의 결함 여부까지 입증해야 하는 탓에 대기업을 상대로 개별 소비자가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나서는 게 쉽지 않았다. 개정안에서는 소비자가 제조물로 인한 손해 발생 여부를 입증하면 해당 손해가 제품의 결함 탓인지 여부는 기업이 입증토록 규정했다. 시민단체와 학계는 제조물 책임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된 것 자체에는 긍정적인 뜻을 나타내면서도 이번 개정안이 실효성을 가질지 여부에 대해선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이미 개별 법률에서 유사한 방식의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됐지만 거의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징벌적 ‘3배’ 손해배상 과연 효과 있을까

유사한 징벌적 배상도 적용사례 적어

국내 사법체계에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된 것은 2011년 3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이 처음이다. 하도급법에서는 원사업자가 기술유용 행위를 해 수급사업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그 손해의 3배까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규정하고 있다. 통상 원사업자 위치에 있는 대기업이 수급사업자인 중소기업의 기술을 갈취하거나 유용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자 만든 조항이다. 이후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신용정보법’ 등 개별 법률에도 사안별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됐다. 이번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의 경우 개별 법률에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된 일곱 번째 법안이다.  

하도급법을 기준으로 하면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된 지 5년이 넘었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이 실제로 적용된 사례는 단 두 건뿐인 것으로 학계는 집계하고 있다. 김차동 한양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는 “실제 적용 사례는 2015년 수급사업자가 CJ대한통운을 상대로 부당한 위탁 취소와 관련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과 파견근로자 8인이 모 반도체 장비업체를 상대로 정규직과의 상여금 차별문제를 제기한 것 등 두 건뿐”이라며 “이마저도 CJ대한통운건은 1심에서 패소했고, 상여금 차별 문제도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차별액의 2배를 배상하라’는 중재판정을 받아낸 게 전부라 실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배상액 규모가 너무 작다는 점이 꼽힌다. 3월 30일 통과된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을 포함,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된 개별법안 7개 모두 배상액을 ‘손해액의 최대 3배’로 일괄 규정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학계에선 배상한도를 ‘3배’로 정한 근거가 명확지 않을 뿐더러 배상금액 자체가 낮다보니 피해자가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극적으로 이용케 하는 유인책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 중이다. 

김차동 교수는 “통상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수급사업자나 파견근로자만 해도 원청업체와의 계약 취소 내지는 단절을 각오하고 싸워야 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이 같은 손해나 잠재적인 피해를 감안하면서 소송에 나설 만큼 충분한 배상이 이뤄지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법률상 ‘최대 3배’라 해도 재판부 재량에 따라 실제 선고되는 징벌 배상금 규모는 많아야 2~2.5배 수준일 것”이라며 “이런 감경문제를 감안하고, 제도의 당초 목적 중 하나인 ‘민사적 제재를 통한 위법·부당한 행위의 사전 예방’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배상액 규모를 ‘10배’ 정도로 대폭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도 신체·생명 관련 피해의 심각성에 비해 배상규모가 너무 작다는 이유 등으로 개정안의 수정을 요구해 왔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가 분석한 미국 법무부 통계국의 ‘2005년 징벌 배상소송 관련 보고서’ 내용을 보면 배상금과 징벌 배상금 간 격차가 많게는 최대 16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측 간 격차가 3배 초과된 경우도 24%로 4건 중 1건꼴이었다. 참여연대는 “징벌적 배상은 배상금과의 비율을 통해 일률적으로 정해질 수 없는 것이고, 재발 방지에 필요한 액수가 배상금의 3배를 초과하는 경우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며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서는 3배를 초과해야만 반드시 정의에 부합하고 징벌적 배상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이 지난해 6월27일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집단소송제 확대 등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제공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이 지난해 6월27일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집단소송제 확대 등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제공

집단소송제 도입 확대 등 보완 필요 

배상금 논란과 관련해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월 21일 현행 민법과 민사소송법에 대한 특례로 ‘징벌적 배상에 관한 법률안’을 같은 당 의원 14명과 함께 발의한 상태다. 이 법안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액의 한도를 배상금의 2배로 정하되 고의나 중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에 손해를 끼친 경우에는 한도 없는 무제한의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했다. 박주민 의원실 양재원 보좌관은 “제조물 책임법에서 규정한 징벌 배상을 최대로 한다 해도 사망사고의 경우 1억원 남짓이 배상금의 전부일 것”이라며 “피해자들에 대한 충분한 배상을 하고 불법행위도 방지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보다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집단소송제를 확대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집단소송제도는 피해자 일부가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해 승소하면 그 효력이 별도의 판결 없이도 동일한 피해자들에게 적용되는 제도다. 국내에서는 증권분야에 한해 집단소송제도가 허용되고 있다. 과거 이동통신사나 신용카드사, 게임업체 등의 대형 개인정보 유출사건만 보더라도 집단소송제의 필요성이 확인된다. 이들 사건 모두 현행 기준으로는 각 개별 법안에 따라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이다. 하지만 피해자가 많게는 1000만명 단위로 광범위하고, 배상금액도 몇십만원 수준으로 적다보니 개별 소비자가 일일이 소송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일부 로펌 등이 피해자를 모집해 소송에 나서기도 하지만 소송 사실을 모르거나 비용 등의 문제로 아예 소송을 포기하는 피해자들이 훨씬 많다. 제조물 책임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의 경우 특히 피해나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고, 일단 피해가 발생하면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 등을 감안했을 때 집단소송제 도입이 제도의 실효성 강화를 위한 보완제도가 될 수 있다. 

홍정아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변호사)은 “기업의 무분별한 이익추구로 인해 집단적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기 힘든 상태로 방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집단소송제는 피해자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을 현대적으로 구성해 제공해주는 것인 만큼 도입 확대를 고려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징벌적 손해배상과 달리 집단소송제의 경우 기업이 “남용이 우려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단기간 도입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10년 넘게 집단소송제 도입을 논의해온 유럽연합(EU)도 최근 제도의 남용 방지장치 마련을 기본으로 하는 권고안을 제시한 상태”라며 “기존 민사소송법에서 이미 ‘선정 당사자’라는 대표자를 선출해 소송을 수행하도록 허용하고 있으므로 집단소송제 도입보다는 이 같은 기존 제도의 보완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부작용이 적다”고 밝혔다.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국가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체계가 부족한 것도 보완해야 할 점으로 거론된다. 정부는 국토교통부 산하 자동차결함신고센터 등 극히 일부 제조물에 한해 피해사례 등을 수집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제조물 결함으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 대다수가 해당 제조물과 연관된 정부 부처 민원창구를 두드리거나 사법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상이나 영향력이 떨어지는 한국소비자원 등을 통해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정부가 운영 중인 소송지원제도도 별 효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해영 더불어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국소비자원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조정 결과’ 자료를 보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소비자원 내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 상정된 안건 중 조정위가 내린 분쟁조정 결과에 불복한 사례가 1746건에 달했다. 조정위의 분쟁조정은 법적 효력이 없어 기업이 거부해도 강제할 도리가 없다. 이를 위해 소비자를 위한 소송지원을 하고 있지만, 1746건의 불복 사례에서 실제 소비자를 위한 소송지원이 이뤄진 사례는 10건으로 전체의 1%에도 못미쳤다. 

박동욱 한국방송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피해 사례 수집 없이 기업의 불법행위를 감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제품 사용에 대한 개인의 피해 사례를 모으고 종합하는 국가 체계가 없다면 집단소송 제도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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