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Q&A(9) | 건강피해 판정기준, 이런 접근법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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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Q&A(9) | 건강피해 판정기준, 이런 접근법은 어떨까?

최예용 0 4549

가습기살균제 Q&A(9) | 건강피해 판정기준, 이런 접근법은 어떨까?

 

주간경향 2017 2 14 


1월 20일 국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이 통과되면서 정부의 판정기준을 어떻게 개선하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의 판정기준 개선 연구가 4월에 마무리될 예정인데, 어떤 질환과 특징을 새로운 판정기준에 포함하는지에 따라 피해대책의 대상이 크게 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판정기준의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첫째,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피해의 인정범위가 결정된다. 질환의 종류에서부터 신고된 피해자 중 몇 명이 인정범위에 포함되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된다. 현재까지는 폐질환 한 가지만 인정되는데, 그것도 말단기관지에서부터 염증이 시작돼 폐 전체로 퍼져 폐를 찍은 영상사진에서 목욕탕 칸막이 유리와 같이 뿌옇게 보이는 간유리음영 현상이 보이고, 폐섬유화가 나타나는 증상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급성적으로 이루어지는 특징을 보이는 경우만 인정된다. 

 

이런 판정기준 때문에 지금까지 정부의 4차례에 걸친 판정에서 883명 중 32.4%인 286명만이 ‘관련성 확실’과 ‘관련성 높음’의 1~2단계로 판정돼 이들에게만 병원비와 장례비 일부가 지원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구제법에 의한 지원대상의 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구제법에 의거해 제조사들로부터 기금을 모아서 정부의 지원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관련성 낮음’과 ‘관련성 거의 없음’의 3~4단계로 판정된 피해자들에 대해 병원비와 장례비 일부를 지원하게 된다. 그러나 기금 조성에 한도가 있어 모든 3~4단계 피해자를 지원할 수 없으므로 나름의 기준을 다시 설정해 지원대상을 정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조금의 관련성이 있다고 판정된 3단계 피해자들이 최대한 지원대상에 포함되도록 하고, 4단계 중에서는 폐이식을 하거나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거나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의 중증 환자들을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우선적으로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판정기준 설정과정은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 노출되기 전과 후의 건강 변화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지 않고 있다. 둘째, 가습기 살균제 노출이 일으킬 수 있는 각종 장기에의 건강영향에 대한 역학적·독성학적·노출평가적 측면의 기본연구가 제대로, 그리고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매우 제한적인 자료과 경험만을 토대로 하고 있다. 셋째, 가습기 살균제 노출이 소위 비특이적인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하고 있다. 비특이적인 질환은 천식, 비염, 폐렴, 폐암과 같이 비교적 흔하고 다양한 원인이 있거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질환을 말한다. 

 

그런데 현재의 판정기준 연구는 가습기 살균제 노출이 이러한 비특이적인 질환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거나, 비특이적인 질환은 가습기 살균제 노출과 무관하다고 가정하고, 비특이적인 질환과 구분되는 특이적인 질환이나 증상만을 찾아서 판정기준에 포함하려고 한다. 소위 증거주의에 입각한 판정기준 마련이라는 것인데, 정작 가습기 살균제 노출이 비특이적인 질환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모순된다. 실제로 피해신고자의 상당수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는 중 또는 사용한 후 천식, 비염, 폐렴 등과 같은 비특이적인 질환을 호소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건강피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다음과 같은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1차 판단=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후에 새롭게 나타난 질환과 사용 이전에 있던 질환(기저질환)이 악화된 모든 경우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피해라고 인정한다. 즉 이런 경우는 모두 현재의 판정단계 구분에서 2단계로 포함한다. 이 경우 가습기 살균제 이외의 다양한 발병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서 발병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의학적 증거가 제시되는 경우에는 4단계, 즉 ‘관련성 없음’으로 판단한다. 

 

▲2차 판단=1차 판단 중에서 특이적인 특징을 보이는 경우는 1단계로 판단한다. 따라서 비특이적인 질환과 기저질환이 악화된 경우는 모두 2단계로 분류된다. 

 

▲3차 판단=1~2차 판단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는 추가 연구대상으로서 판정을 보류하고 추가적인 연구를 계속한다. 이 경우 구제법에 의거해 기초적인 병원비와 장례비를 지원한다. 이러한 접근법에 의거하면 3단계 판정의 의미는 ‘관련성 낮음’이 아니라 ‘현재로서는 모름’으로, 추적조사의 모니터링 대상이 된다. 4단계 판정의 대상은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된 ‘노출되지 않음’의 경우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서 발병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근거가 제시된 ‘관련성 없음’이 된다.

 

이러한 접근법은 지금까지 정부가 판정해온 1~4단계의 구분방식과 1~2단계는 정부 지원이라는 대책을 그대로 인정하되, 다만 각 단계의 의미와 정의를 새롭게 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는 판정기준을 의학적 판단에만 의존했다면 새로운 접근법은 의학적 판단을 기초로 노출평가를 위주로 한 환경보건학 및 사회적 판단을 추가해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 된다. 

 

또한 지금까지는 이 사건의 주된 책임자인 제조사들이 뒷짐을 진 채 정부 판정과정의 한계와 허점을 교묘히 악용했는데, 새 접근법은 자신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책임한계를 규명하지 않으면 의학적인 한계영역까지 모두 책임지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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