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숨이 안 쉬어져’](22) 가습기 살균제 문제 해결 현황과 과제- 피해 대책 “애매모호한 경우라도 개연성 보이면 피해자다”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 언론보도
홈 > 정보마당 >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 언론보도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 언론보도

[엄마, 숨이 안 쉬어져’](22) 가습기 살균제 문제 해결 현황과 과제-<중> 피해 대책 “애매모호한 경우라도 개…

최예용 0 4359

[<주간경향>·환경보건시민센터 공동 기획 가습기 살균제 참사 기록 ‘엄마, 숨이 안 쉬어져’](22) 가습기 살균제 문제 해결 현황과 과제-<중> 피해 대책 “애매모호한 경우라도 개연성 보이면 피해자다”

 

주간경향 2017 2 14 onebyone.gif?action_id=af3b326bfe8fd14944513218b4db88f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재난이나 사고가 나면 피해자를 정확하게 가려내고 그들에 대해 피해 정도에 따라 보상 또는 배상하는 문제가 뒤따른다. 죽은 사람은 결코 되살릴 수도 없고, 영구장해 또한 정상으로 되돌릴 수도 없다. 따라서 산 사람, 즉 유가족은 과거 가족이 함께했던 것과 같이 생활하기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더라도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보상·배상은 당연히 받아야 한다. 재난이나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진상규명에 이어 피해대책이 피해자나 유가족들에게 중요한 의제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독일 등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입덧완화제 탈리도마이드 약화로 인한 기형아 1만명 출생 참사와 인도 보팔시에서 벌어진 농약 유출로 인한 20세기 최악의 대규모 인명피해, 일본의 미나마타마병과 이타이이타이병과 같은 공해병 환자 대량발생 사건 등에서도 피해자 판정과 피해자 보상 등을 놓고 기업·정부와 피해자 간 갈등과 대립이 심각하게 빚어졌다. 이들 세계적인 환경·의료재난 사건의 경우 피해대책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으로 이루어져 격렬한 시위와 대법원까지 가는 지루한 소송이 벌어졌다. 미나마타병의 경우 대법원으로부터 정부도 책임 있다는 판결을 얻어내는 데 무려 30~40년의 세월이 걸리기도 했다.

아직 진상규명 매듭 안 돼 답답한 피해자들 

우리나라에서도 석면질환자가 옛 석면광산 지역을 중심으로 대량 발생하고 대형 재난과 안전사고가 잇따르면서 비슷한 문제가 불거졌다. 석면 피해자의 경우 원인이 환경성일 경우 정부가 긴급구제해주는 석면피해구제법이 2011년 제정돼 피해자 구제와 관련해 얽히고설켜 있던 매듭을 조금이나마 느슨하게 풀었다. 하지만 현재 이것도 석면암환자·석면폐 1등급과 석면폐 2·3등급을 구분해 차별적인 피해구제를 해주면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3년 전부터 이와 관련한 불만 등이 증폭돼 폐석면광산 주변 주민들을 중심으로 2년 전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꽃상여 시위를 벌이는 등 투쟁이 있었으나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안방의 세월호 사건, 세계 최초의 바이오사이드(살생물제) 재앙, 단군 이래 최악의 환경참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가습기 살균제 재난도 앞서 소개한 동서고금의 여러 재난과 사건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밟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가습기 살균제가 아무런 제재 없이 시장에 나오게 된 경위와 정부가 이를 사전에 거르지 못한 까닭 등이 일부 드러나기는 했지만 진상규명이 아직 속 시원히 이루어지지 않아 피해자와 유가족은 물론이고 일반시민들도 답답해 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망 사건'과 관련한 형사재판 1심 선고공판이 열린 1월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예상보다 낮은 형량에 침통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법원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 책임자로 지목된 신현우(69)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고, 함께 기소된 존 리(49) 전 대표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 정지윤 기자


피해자 판정과 피해자 구제·배상 등 피해대책은 진상규명보다도 훨씬 더 못 미덥다. 피해자 신고 접수와 피해 판정이 늑장으로 이루어져 가습기 살균제 구매 또는 사용 증명이 사실상 불가능하거나 어려워진 사례가 매우 많다. 이들은 피해 판정을 신청하더라도 대부분 피해구제 대상 등급 외 판정을 받는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자 가운데 이런 사람이 피해구제 등급을 받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다. 이러한 피해 신고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하게 마련이다. 이들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 제정을 통해 자신들의 처지가 어느 정도 풀릴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지 5년여가 지난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한 이 법도 그들의 응어리진 한을 제대로 풀어주지는 못했다. 물론 이 법은 가해기업들이 1000억원가량의 피해자 지원기금을 조성해 피해구제 등급에 해당하는 1단계와 2단계 판정을 받지 못하고 3단계와 4단계 판정을 받았더라도 이들에 대해 긴급의료비 등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는 두었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 얼마나 많은 피해구제 등급 외 판정자가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고 있다. 

땜질식 임시방편으로 이루어지는 피해대책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은 비급여 의료비 항목에 대해서도 구제급여를 지원하도록 했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법 제58조에 따라 손해배상을 받은 후에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질병이나 장해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손해배상금으로 치료비를 충당해야 한다. 사망자나 경증 피해자의 경우 치료비 자체가 없거나 미미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문제가 없다. 하지만 돌이 지난 직후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입어 10년 넘게 고통을 겪고 있는 대표적 중증피해자인 임성준군과 같이 평생을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정상적 생활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평균수명까지 산다고 하면 수십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의료·요양비가 들어갈 수도 있다. 임군의 경우 가해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한테 이 비용을 모두 받아내야 하는데, 피해배상 협상을 통해 이를 온전히 받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임군의 경우는 물론 매우 흔한 사례가 아니다. 하지만 피해 정도는 임군에 못 미친다고 해도 악마의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영구장해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은 상당수가 된다. 또 남의 폐를 이식받아 목숨은 건졌지만 언제 다시 재수술을 받아야 할지, 언제 저승사자가 찾아올지 몰라 불안의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중증 영구장해 어린이와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부모, 폐이식을 받은 이와 함께 평생 가정을 꾸려야 하는 사람들은 정말 억만금을 주어도 고통이 결코 멈추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데도 이런 사람들의 정신적 피해대책과 생계대책 등은 현재로서는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피해대책은 땜질식이며 임시방편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에 앞서 정부한테서 공식 피해 인정을 받지 못한 피해 신고자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폐섬유화를 동반한 중증 폐손상 환자뿐만 아니라 폐렴, 천식, 비염, 피부병 등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의심되는 모든 증상과 질병에 대한 피해 판정기준을 하루빨리 만들어 피해를 입고도 구제를 받지 못하는 억울한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나오지 않도록 힘을 쏟아야 한다. 

석면 노출에 의해서만 악성중피종이 발생하는 것과 같이 이러한 새로운 판정 기준 대상 질환이 매우 특이적이라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 판정에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폐렴, 천식, 비염 등은 모두 많은 다른 요인에 의해 생길 수도 있는 비특이적 질환이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구비, 연구인력, 행정력 등을 최대한 동원해 의심되는 질병과 가습기 살균제 독성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때 정부든, 언론이든, 전문가든 취해야 할 자세는 연결고리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개연성이 보이면 피해자로 판정해주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피해자 판정 문제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대다수 문제가 풀릴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대책은 여러 갈래로 이루어져야 한다. 가장 먼저 앞서 누누이 이야기한 정확하고 과학적인 피해 판정이다. 하지만 이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과학도 인간이 하는, 즉 과학자가 하는 것이어서 완벽하지가 않다. 과학, 의학이라는 이름으로 마치 자신이 신처럼 행동한다면 피해자와 갈등만 커질 뿐이다. 따라서 과학으로 확실히 밝혀낼 수 있는 부분은 그대로 따르되 과학의 한계 때문에 애매모호한 경우에는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판정을 처리해주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과 환경운동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 피해자 사망자 수가 적힌 대형 팻말을 들고, 정부의 책임 수사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과 환경운동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 피해자 사망자 수가 적힌 대형 팻말을 들고, 정부의 책임 수사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고통에 빠진 그들, 특단의 배상 해줘야 

둘째, 피해배상액과 관련한 것으로 피해자와 유가족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많이 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를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기업이든 정부든 피해배상액이 무한정일 수는 없기 때문에 기금이나 예산, 통상적 관례 등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기업과 정부가 인간의 마음을 하고 있다면 특이하게 엄청나게 들어가는 치료비와 노동력 완전 상실, 영구적 비인간적 삶이라는 고통의 바다에 빠진 이들에 대해서는 특단의 배상을 해주는 것이 마땅하다. 

끝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해서는 마음과 정신까지 피해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들에 대해서는 자녀 교육상담, 트라우마 등에 대한 정신과적 치료, 일상생활 상담 등 피해자와 유가족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일에 대해 가해기업과 정부가 자기 일처럼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한 비용부담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정부는 정부대로, 가해기업은 가해기업대로 과거의 실수와 과오를 조금이라고 만회할 수 있다. 이것은 곧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름길이 된다. 

 

안종주 박사 
onebyone.gif?action_id=c0c96d499d908908798a2393c54c606

 

0 Comments
시민환경보건센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