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예용의 환경보건이야기](16) 국제 석면추방 운동가 이정림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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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용의 환경보건이야기](16) 국제 석면추방 운동가 이정림을 아시나요

최예용 0 3827

[최예용의 환경보건이야기 ‘환경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16) 국제 석면추방 운동가 이정림을 아시나요

 

주간경향 2017년 2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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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2011년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12년에 그녀를 기린 ‘레이첼이정림어워드’가 제정되고 첫 수상자로 캐나다 석면광산을 폐쇄한 퀘벡주지사 폴린 마르와가 선정됐다. 그리고 2016년의 수상자는 한국의 정지열과 인도의 뭄바이 산업보건안전센터였다. 


1급 발암물질 석면 사용을 금지시켜 석면피해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산업보건과 환경보건 분야에서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한국인 석면피해자가 있다. 악성중피종 환자인 이정림씨다. 악성중피종이 발병한 환자 10명 중 8~9명은 석면노출이 원인이고, 1~2명은 원인을 모른다. 때문에 의학계는 악성중피종을 석면노출에 의해서 발생하는 석면암으로 규정하고 있다. 폐를 둘러싼 이중의 막 사이에 암덩어리가 생기는 악성중피종은 불에도 타지 않는 강한 물질인 석면이 폐에 침투해 염증을 일으키면서 10년 이상의 오랜 잠복기를 거친 후에 발병한다. 매우 예후가 좋지 않아 발병자는 1년 전후로 사망한다. 

1966년생인 이정림씨는 고교 재학시절인 1981년부터 1984년 초까지 3년간 대전에 살았는데,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학교 인근에 한국에서 가장 큰 석면 시멘트공장의 하나인 벽산 대전공장이 있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을 나와 결혼해 신혼살림을 차린 곳이 대전 서구 오류동의 한 아파트였다. 자신이 다녔던 고등학교에서 가까운 곳이었고, 인근에 문제의 벽산 석면시멘트공장이 가동 중이었다. 1991년부터 2년간 그곳에서 살았다. 이후 그녀는 남편의 직장을 따라 경북 김천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10년이 훨씬 지난 2006년 어느 날, 그녀는 몸이 이상해 대전의 대학병원을 찾았다. 몇 번을 다니며 검진을 했지만 정확한 병명을 알지 못했다. 서울삼성병원으로 가서야 그녀의 몸에 ‘악성중피종’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의사는 이 병이 석면노출에 의한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는 전국 각 지역 중에서 대전지역에 악성중피종 암환자 통계치가 높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사실을 지적했다. 2007년 이후 석면문제가 주요 사회 이슈화하면서 백 교수의 지적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2009년 하반기부터 대전시가 나서 문제의 벽산 대전공장 주변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벽산대전공장은 1996년까지 가동하고 이후 전북 익산으로 옮겨갔고, 대전공장 자리에는 벽산아파트가 세워져 있다. 이정림씨는 5년째 항암치료를 받으며 투병 중이었다. 놀랍게도 그녀가 살았던 아파트에는 악성중피종으로 사망한 주민이 2명이나 더 있었다. 

2010년 12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캐나다 석면수출 반대 기자회견장에서 이정림씨가 자신이 어떻게 석면에 노출돼 암에 걸렸는지 설명하고 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2010년 12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캐나다 석면수출 반대 기자회견장에서 이정림씨가 자신이 어떻게 석면에 노출돼 암에 걸렸는지 설명하고 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석면 시멘트 공장 인근에서 보낸 고교 시절 

필자는 그녀와 함께 그녀가 다녔던 고등학교와 신혼시절 살았던 아파트를 둘러봤다. 그녀는 기가 막혀 했다. 자신이 듣도 보도 못했던 석면공장이 바로 인근에 있었다니…. 그녀는 분노했다. “왜 40대 중반의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당시 그녀는 고등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을 두고 있었다. 이후 그녀는 석면추방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전국에서 벌어진 석면피해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에 발벗고 나섰고, 서울과 전국에서 개최되는 각종 석면 추방행사에 참여했다.

 

2010년 10월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 국제회의에도 참석했다. 그녀의 숨은 영어실력이 빛을 발했다. 오랫동안 석면 추방을 해온 운동가들은 악성중피종 환자가 직접 국제회의에 나와 피해사례를 발표하고 석면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모습에 놀라고 반가워했다. 국제 석면 추방 사무국(IBAS)의 로리 카잔 대표는 “레이첼(이정림의 영어 이름)은 놀라운 여성이다. 자신의 몸을 갉아먹는 암의 원인이 석면 때문이란 것을 알고, 또 아직도 아시아 여러 나라가 석면을 사용하는 것을 알고 몸소 나섰다. 특히 한국이 인도네시아에 석면공장을 팔아먹었다는 사실을 미안해 하며 아시아지역에서의 석면 추방에 앞장섰다”고 말했다. 

 

2010년 12월 초 이정림은 7명의 아시아 석면 추방 운동가들과 캐나다 몬트리올과 퀘벡을 방문했다. 캐나다가 대규모 석면광산을 가동해 매년 20만톤씩 전량을 아시아로 수출한다는 계획을 막기 위해서였다. 기자회견, 방송 인터뷰, 거리시위, 퀘벡의회 방문, 석면광산 관계자 미팅 등을 통해 그녀의 목소리가 캐나다 사회에 전해졌다. 캐나다는 퀘벡 지역이 독립하려는 움직임 때문에 석면광산 재가동 문제를 눈감아왔는데, 아시아에서 온 석면피해 여성의 외침에 캐나다 의료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석면광산 폐쇄의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캐나다의 석면 추방 운동가 캐슬린은 “레이첼 이정림이 석면문제에 눈 감고 귀 막고 있던 캐나다 사회를 깨웠다”고 말했다.

2016년 12월에 열린 환경보건시민대회에서 인도의 석면추방단체인 뭄바이 산업보건안전센터에게 시상된 레이첼이정림어워드 상패.

2016년 12월에 열린 환경보건시민대회에서 인도의 석면추방단체인 뭄바이 산업보건안전센터에게 시상된 레이첼이정림어워드 상패.

 

2011년 들어 그녀의 상태는 악화되어 갔다. 9월쯤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매년 열리는 아시아석면추방회의가 이번에는 인도에서 열리는데, 회의에 갈 수 있겠어요?”, “그럼요, 당연히 가야죠.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일정을 조정하고 있어요. 의사 선생님이 못 가게 할까봐 아프다고 말도 못해요. 아들을 데려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고3이라 학교에서 허락을 안해요.” 그녀는 휄체어에 몸을 싣고 11월 일주일간 인도를 방문했다. “인도에서 석면 사용을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저와 같은 석면피해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11월 14일 인도 자이푸르에서 열린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 국제회의장 연단에서, 그리고 기자회견장에서의 그녀의 호소는 절절했다. 인도에서의 연설은 국제적인 석면 추방 운동가 이정림의 마지막 활동이 되었다. 그녀는 2011년 12월 21일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레이첼 이정림은 자신의 마지막 삶을 국제 석면 추방 운동에 불살랐다.

그녀가 떠난 다음해인 2012년 8월 캐나다 퀘벡주의 선거에서 승리한 야당인 퀘벡당은 석면광산 가동을 위해 재정지원을 하지 않고 석면광산을 폐쇄하겠다고 선언했다. 수년 동안 캐나다의 석면광산 폐쇄를 위해 노력해온 세계 여러 나라의 석면 추방 운동가들은 캐나다의 낭보를 듣고 가장 먼저 레이첼 이정림을 떠올리고 너나 없이 그녀가 일등공신이라고 말했다. 

“석면문제 눈감고 있던 캐나다 사회 깨웠다”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와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는 2012년 12월 열린 제2회 환경보건시민대회의 환경시민상 국제부문상을 ‘레이첼이정림어워드’로 명명하고 지구촌 석면 추방을 위해 앞장선 개인이나 단체에 상을 주기로 했다. 이 상의 제정과 시상에는 한국의 환경보건시민센터, 부산석면추방공대위,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외에 일본의 석면추방전국연락회의, 홍콩의 아시아모니터링센터, 인도의 직업환경건강네트워크, 영국의 석면추방국제사무국 등이 함께 뜻을 모았다. 

 

레이첼이정림어워드의 첫 수상자는 캐나다 석면광산을 폐쇄한 퀘벡주지사 폴린 마르와가 선정됐다. 2013년도 12월에 시상된 두 번째 수상자는 영국의 석면 추방 운동가 로리 카잔이 선정됐다. 2014년에는 일본 오사카 인근의 센난 지역에서 재일한국인을 포함한 석면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승리로 이끈 유오카 가즈사다와 센난 석면피해시민모임이 수상자였다. 2015년의 수상자는 일본 사회가 환경성 석면문제에 눈을 뜨게 만든 ‘구보타 쇼크’를 발굴한 3인방 후루가와, 가타오카, 이이다였다. 그리고 2016년의 수상자는 한국의 정지열과 인도의 뭄바이 산업보건안전센터였다. 정지열은 석면폐환자로서 이정림과 함께 아시아 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석면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는 운동가다. 뭄바이 산업보건안전센터는 아시아에서 가장 석면소비가 많은 인도에서 석면공장 노동자들이 최초의 법적소송에서 승리하도록 한 인도 석면 추방 운동의 구심적 단체다. 

 

2016년 12월 15일 캐나다 정부는 모든 종류의 석면 사용을 2018년까지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캐나다의 석면 추방 운동가 캐슬린은 전 세계 지인들에게 돌린 이메일에서 “오늘 역사적인 승리의 날, 하루종일 레이첼 이정림을 생각한다. 그녀가 2011년 겨울 캐나다 땅에 뿌린 석면 추방의 씨가 5년이 지나서 싹을 피웠다”고 말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환경보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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