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 Q&A 8] 가습기 살균제 사용 후 나타난 폐섬유화인데, 왜 인정 안 되나?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 언론보도
홈 > 정보마당 >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 언론보도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 언론보도

[가습기살균제 참사 Q&A 8] 가습기 살균제 사용 후 나타난 폐섬유화인데, 왜 인정 안 되나?

최예용 0 5055

가습기 살균제 참사 Q&A | (8) 가습기 살균제 사용 후 나타난 폐섬유화인데, 왜 인정 안 되나?


주간경향 기획시리즈 [엄마 숨이 안쉬어져 21] 2017년 2월7일자 


폐 질환이 없던 사람이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후 폐가 섬유화되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병원 기록에는 IPF(특발성 폐 섬유화)가 의심된다고 쓰여 있었다. 유족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신고를 했지만 4등급(살균제 관련성 거의 없음) 판정을 받았다. 현행 ‘가습기 살균제 폐질환 판정기준’에 따르면 3등급(살균제 가능성 낮음)과 4등급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아니다. 정부 판정단의 설명은 이렇다.

‘IPF(특발성 폐섬유화)라는 명확한 진단명이 존재한다. IPF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폐섬유화와는 그 기전이 다르다.’

IPF 환자는 살균제 피해자와 무엇이 다르길래 살균제에 오랫동안 노출되었다는 것이 확인되고 그 후 폐섬유화증이 발병하여 사망하였는데도 가습기 살균제와의 관련성이 거의 없다는 것일까?

폐에서 산소교환이 이루어지는 부근을 폐의 ‘간질’이라고 하는데, 그 부분에 염증과 섬유화를 일으키는 질환을 ‘간질성폐질환’이라고 한다. 간질성폐질환의 종류는 매우 다양한데, 정부는 피해신청자 중에서 ‘말단 기관지 중심 급성 간질성폐질환’이 확인되는 경우에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인정한다. 

 

피해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흉부 CT 상 병변이 폐의 아랫부분에서부터 나타나 폐의 주변부는 침범하지 않고 주로 폐 소엽의 중심부에서 샤워실 칸막이 유리와 같이 희뿌연 음영이 드리운 모양(간유리 음영)과 희미한 결절성 음영이 나타나는 양상이 보여야 한단다. 이것은 2011년 정부 조사단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 역학조사를 할 때 확인한 내용이고, 다른 요인에 인한 폐섬유화와 구분된다고 하는 특징이다.

그에 비해, IPF는 만성적인 간질성폐질환 중 하나다. IPF와 같은 만성적인 간질성폐질환의 경우 폐의 주변부 침범이 많으며, 간유리 음영이나 결절성 음영보다는 그물 모양의 망상형 음영과 그것이 더 진행되어 폐가 벌집처럼 보이는 봉소폐 소견을 특징으로 한다. IPF의 이러한 특징을 통상형 패턴(UIP)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간질성폐질환을 앓고 있는 대다수가 통상적으로 이러한 패턴을 보이기 때문이다. 

 

석면으로 인한 간질성 폐질환이나 류마티스와 같은 다양한 자가면역성 전신 염증성질환이 폐에 합병되어 발생한 간질성폐질환 등이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말단 기관지 중심 패턴과 유사한 ‘급성 간질성 폐렴’이나 ‘과민성 폐장염’의 경우에도 그 진행 경과가 만성적으로 이어질 경우 UIP 패턴을 닮아가는 경향을 보인다.

정부 판정단 설명의 문제점은 이렇다. 첫째, 국제적인 간질성폐질환 진단기준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와 같이 이미 알려진 흡입독성 물질에 독성수준으로 노출된 과거력이 확인될 경우 원칙적으로 IPF 진단을 내릴 수 없다. IPF는 UIP 패턴의 만성적인 섬유화 양상을 보이면서도 뚜렷하게 그 원인을 찾을 수 없을 때 진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IPF와 유사한 UIP 패턴을 보인다고 해서 석면폐나 특정 유해물질에 만성적으로 노출되어 발병한 과민성 폐장염에 IPF 진단을 내릴 수 없다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IPF는 원인을 특정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는 진단명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살균제가 UIP와 같은 만성적인 폐 손상 패턴을 유발한다는 것이 동물실험으로 확인이 되지 않으면 관련 피해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UIP 패턴은 만성적인 폐섬유화 패턴이기 때문에 평균적인 수명과 폐 구조, 면역체계 등이 인간과 동일해야 같은 환경에서 재현할 수 있다. 지구 상에 인간과 똑같은 동물은 없다. 피해 신청자가 5400여명에 이르고, 그 안에 3~4등급을 받은 만성 간질성폐질환 환자들이 많다. 동물에서 똑같이 재현이 안 되니 피해자로 볼 수 없다는 설명은 어불성설이다.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사람들 중 다수에서 UIP 패턴이 나타났다면, IPF가 아니라 ‘만성 가습기 살균제 폐’라고 해야 한다. 이들이 병원에서 IPF 진단을 받은 것은 기존 의료진들이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즉 원인을 특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IPF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급성 간질성폐질환은 그 기전이 서로 다르다는 주장의 핵심적인 근거 역시 사람이 아닌 쥐를 대상으로 한 살균제 물질 흡입 독성 실험 결과에 의존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물질이 가정에서 쓰는 초음파 가습기에서 에어로졸화되어 흡입될 때의 입자 크기는 75~118nm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이 정도 크기의 입자가 폐의 말단 기관지 부위에 침착되어 그 부분에서 염증과 섬유화를 유발한다는 것이 쥐 실험에서도 확인이 되었다는 거다. 

 

하지만 독성학 연구 결과들을 보면 이 정도 크기의 미세한 독성 나노 물질은 말단 기관지를 넘어 폐포 끝까지 도달하여 폐포의 공기·혈관 장벽을 뚫고 모세혈관을 통해 전신을 순환할 가능성이 충분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실제로 임신 중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되어 태아가 사망한 사례가 제법 보고되었는데, 이는 가습기 살균제 물질의 ‘전신 독성 경로’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만약 살균제의 전신 면역 독성이 확인된다면 천식·폐렴 등은 물론이고 태아 유산 사례와 류마티스나 아토피와 같은 자가면역성 전신 염증성 질환 등을 모두 피해 사례로 볼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와 유사한 흡입독성 물질들이 자가면역성 전신 만성 염증성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보고가 드물지 않고, 실제로 살균제 피해 신청자들 일부의 의료정보를 검토한 결과 살균제 노출 후 다양한 종류의 전신 만성 염증성 질환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가습기 살균제 간질성폐질환은 다양한 종류의 전신 만성 염증성 질환에 합병되는 경우가 많다. 즉 가습기 살균제 물질의 전신 독성 경로를 통해 IPF와 유사한 UIP 패턴의 간질성폐질환이 발병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살균제 피해자들이 호소하는 질병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지만 그 기전은 유사하다.

 

살균제에 노출되었던 과거력 외에 다른 이유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만성 간질성폐질환이 발병하였다면 그것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 사례로 봐야 한다. 정부는 살균제 물질의 인체 독성이 확인된 지 5년이 지나도록 추가적인 연구도 하지 않고, 단지 쥐에서 재현이 안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만성적인 간질성폐질환은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성이 ‘거의 없다’고 한다. 납득할 수 없다. 지금까지 피해 신청자 5400여명 중 사망자만 1100명을 넘어섰다. 정부의 협소한 판정 기준으로 공식적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인정을 받은 경우는 260여명에 불과하다. 진정 국민을 위하는 정부라면 소극적인 피해 인정 기조를 폐기하고 지금이라도 억울한 피해자들을 모두 구제해야 한다.

 

<김형전(4단계 판정받은 30대 피해자)>

0 Comments
시민환경보건센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