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피멍드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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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피멍드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최예용 0 14964

‘수십명 죽었는데…’ 과징금 5천만원 솜방망이 처벌
제조·수입사, 대형 로펌 앞세워 ‘법정에서 따져라’

2012년 08월 08일 09:41  환경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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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때문에 수십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정부는 규정 탓만 하며 손을 놓고 있고

수입 제조사는 대형 로펌을 앞세워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택시 운전을 하는 최주완씨는 새벽에 퇴근해 2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광화문에 나왔다. 오랜 택시영업과 최근에 벌어진 부인의 사망 그리고 남은 두 아이를 돌보느라 건강이 말이 아님에도 그는 1인 시위에 나섰다. 보상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십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피해를 입었지만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국을 들썩이게 한 가습기 살균제 사고. 본래 카펫의 항균제 용도로 사용돼야 할 물질을 독성검사나 흡입검사를 하지 않고 가습기 살균제에 넣어 사용하면서 어린아이와 산모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더구나 이들 기업은 인체에 해로운 PHMG, PGM 성분 등이 함유된 제품을 판매하면서 안전한 성분을 사용한 것처럼 표시했다.

 

 

‘안전한 성분’ 허위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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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부인을 잃은 최주완씨. 택시운전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1인 시위에 나섰다.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현재까지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52명이 사망했으며 피해자는 174명에 달한다. 그러나 제품을 만들거나 수입해 애꿎은 목숨을 앗아간 기업들이 받은 처벌은 지난 7월 말 공정거래위원회가 4개 제품회사에 5200만원의 허위광고 과징금 부과와 이에 대한 검찰고발조치에 불과하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는 정부 역시 인정한 부분이다. 피해신고가 잇따르자 보건복지부는 해당 제품을 상대로 동물흡입실험을 통해 호흡수 증가와 호흡곤란 증세를 확인했다. 이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부랴부랴 가습기 살균제를 공산품에서 의약외품으로 바꾸고 제조와 수입 시 반드시 허가를 받도록 관련 제도를 강화했다.

 

 

문제는 이러한 정부의 조치가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는 것. 전문가들은 만약 기업이나 정부가 사전에 충실한 독성평가를 했다면 시중에 제품이 유통되지 않았을 것이고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6월 환국환경보건학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제조 및 판매사들은 주요 살균제 성분을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유럽과 국내에서 안전성 검사를 충분히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초음파 가습기를 사용한 환경과 비슷한 조건에서 노출로 인한 독성을 평가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수입제품은 가습기를 씻는 용도로 사용해야 하지만 국내로 들여와서는 공기 중에 비산시켜 사용하는 가습기 투입용으로 바꿔서 판매했다. 정부 역시 가습기 살균제 흡입독성의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가습기 살균제를 일반 제조상품으로 여겨 안전관리의 사각지대에 방치했다.

 

 

아울러 질병관리본부가 동물실험에서 독성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던 가습기 살균제의 주요 성분 중 하나인 PGH의 경우, 식약청과 보건복지부, 농림수산식품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식품안전포털인 식품안전정보서비스는 ‘PGH는 눈이나 피부에 닿으면 발진이나 화상을 일으킬 수 있고 특히 들이마시면 타는 것과 같은 느낌과 함께 호흡곤란을 겪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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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만약 기업이나 정부가 충분한 독성평가를 거쳤다면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자료=한국환경보건학회>
 

정부는 규정 탓하며 뒷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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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에 나선 순천향대학교 박예림 학생.

그녀는 “수십명이 죽은 큰 사건이기 때문에 이미

해결됐을 것으로 생각했는 데 그렇지 않아 놀랐다”

라고 밝혔다. <사진=김경태 기자>
 
그러나 지난해 말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사람을 사망케 한 위험한 물질을 관리하지 못한 정부와 직접 제조 및 수입한 업체들이 책임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업체에 수거 명령을 내리고 원래 공산품이던 것을 의약외품으로 분류해 안전성 규제를 훨씬 강화했기 때문에 할 일을 다했다는 태도다. 지식경제부 역시 가습기 살균제는 어느 부서에서도 관리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소송이 진행된 후 법적 절차에 따를 것이라는 원론적인 변명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최근 들어 환경보건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환경부 역시 화학물질이 아닌 공산품은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며 이를 규제할 법적 장치 또한 마련되지 않아 관여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정부가 뒷짐 지고 있어 기업도 보상하지 않고 버티는 상황”이라면서 “제품 구입 영수증이나 제품을 직접 갖고 있지 않으면 소송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결국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거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 보상금을 받는 것 외에는 해결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모임을 만들어 1인 시위와 함께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을 고용한 기업과의 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임흥규 팀장은 “기업들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해 ‘온전하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아닌, 체질이나 기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라는 논리로 소송을 질질 끌고 있다”라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의 쥐 실험만으로는 인간에게 어떠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인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법정에서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위해성 알면서도 팔았다’

 

 

그러나 공정관리위원회가 제조 판매사에 대한 현장조사에서 입수한 ‘물질안전보건자료’라는 문건을 보면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가는 원료에 대해 ‘유행성분’이나 ‘마시거나 흡연하지 마시오’라고 명시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기업들이 유해성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한편 재판에서 승소해 보상금을 받으려면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해야 하지만 피해자 대부분이 일반인이기 때문에 이마저도 마땅치 않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정부가 책임을 지고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고 이후 기업에 책임을 묻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독성물질 관리에 허술했던 정부가 일차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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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이 가장 두려운 것은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체 가습기 살균제 사고가 잊혀지는

것이다.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1인 시위에 나선 피해자 신지숙씨,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소송에 이긴다고 해도 최소 2~3년은 필요하다는 점이다. 임흥규 팀장은 “지난해 폐 이식을 한 젊은 엄마가 이후 사망한 사례가 있다. 치료비만 1억원이 넘는데 이를 감당하지 못해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까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산모환자 신지숙씨는 폐 이식 권유를 거부하고 산소호흡기와 휠체어에 의지해 버티고 있다. 그녀는 “폐 이식을 해도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상당수이고 비용도 엄청나 내가 버티겠다”라고 밝혔다.

 

 

얼마 전에 아이의 돌잔치를 치렀지만 아이를 잃은 피해자들이 많아 널리 알리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광화문에 나와 1인 시위를 이어 가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가습기 살균제 사고가 어느새 잊힌 과거의 일이 되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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