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세 살 준식이 앞 파란 사탕…엄마는 차마 떠나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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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 살 준식이 앞 파란 사탕…엄마는 차마 떠나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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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준식이 앞 파란 사탕…엄마는 차마 떠나보내지 못했다

한겨레 2022.5.13 

옥시·애경, 가습기살균제 조정위 불참 ‘시간끌기’ 
아이방 가습기에 썼던 살균제로
평생 죄의식 안고 사는 엄마들
새 정부 태도가 문제해결 변수
가습기살균제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구제를 신청한 피해자는 7600여명이고, 사망자는 1700여명에 이른다. 실제 피해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가습기살균제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구제를 신청한 피해자는 7600여명이고, 사망자는 1700여명에 이른다. 실제 피해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엄마는 아이를 차마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2011년 9월, 서울의 한 아파트를 찾았을 때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과 함께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는데, 거실에 흰색 유골함이 보였다. 그해 2월 세상을 떠난 준식이(가명)의 유골함이었다.


아이 엄마는 말했다. “석 달 동안 매일 가습기살균제 10㎖를 가습기에 넣고 잤어요. 아이가 힘들어해서 병원에 데려갔는데….” 엄마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유골함 앞에는 파란 사탕이 놓여 있었다.준식이는 세 살이었다. 폐 섬유화가 급격히 진행됐다. 의사들도 고개를 흔들었다. 원인 미상의 폐질환. 병원을 찾은 지 40일 만에 준식이는 숨을 거뒀다. 유골함을 바라보던 엄마는 아직 아들을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는 ‘원인 미상 폐질환’ 환자들이 급속도로 생겨나면서 한국 사회가 떠들썩할 때였다. 의사들은 이런 질환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의사들을 수소문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했던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급성 간질성 폐렴이 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논문을 써서 2008년 학계에 보고한 이었다. 그는 2006년께부터 갑자기 관련 환자들이 늘었다고 했다. 그가 본 어린 환자들의 증상은 2011년 당시 보건복지부가 가습기 살균제를 원인으로 추정한 간질성 폐렴과 동일했다.


가습기살균제는 아기를 키우는 가정과 병원 입원실에서 많이 썼다. 옥시 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에는 ‘아기에게도 안심’이라는 광고 문구가 적혀있었다.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부터 2011년까지 48종이 시장에 선보였고 무려 998만 개가 팔려나갔다.


지난 3월 가습기살균제를 가장 많이 판매하고, 가장 많은 피해를 일으킨 서울 여의도 옥시레킷벤키저 앞에서 열린 집회에 옥시의 가습기살균제 제품과 유골함이 함께 놓여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지난 3월 가습기살균제를 가장 많이 판매하고, 가장 많은 피해를 일으킨 서울 여의도 옥시레킷벤키저 앞에서 열린 집회에 옥시의 가습기살균제 제품과 유골함이 함께 놓여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가습기살균제 문제 해결되나 했더니…


2011년부터 원인 미상 폐질환과 가습기살균제의 연관성을 밝히는 연구가 이어졌고, 직접 흡입해서 안 되는 독성물질이 살균제에 쓰인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사회적 해결은 더디기만 했다. 피해자를 구제하는 법률을 야당이 발의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기업과 소비자 간의 사안’이라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2017년 1월에서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하면서, 피해자들이 기업들의 피해구제 분담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피해구제 분담금은 생활 지원과 치료비를 위한 일시적인 지원금 성격이다.지난해 9월에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 조정위원회’(위원장 김이수)가 출범했다. 피해자에 대한 최종적인 배상과 보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조정위는 지난 4월 조장안을 냈다. 가해기업이 사망자 유족에게 2억∼4억원의 지원금을 주고, 초고도 등급 1살 피해자에게는 5억3522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분담금 비중이 가장 높은 옥시와 애경이 조정안을 거부하고 조정위에 불참하면서, 피해 해결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990243693_XfvnyETz_b553eff9b61eaaac03faa9e601f99d3ce6f8d917.jpg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alt="2012년 서울 송파구 신천동 한국광고문화회관 앞에서 녹색소지자연대전국협의회 회원들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 소비자배상 위한 `소비자 기업 피해 대책협의회'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style="border: 0px; margin: 0px; padding: 0px; width: 590px;">

2012년 서울 송파구 신천동 한국광고문화회관 앞에서 녹색소지자연대전국협의회 회원들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 소비자배상 위한 `소비자 기업 피해 대책협의회'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왜 교착 상태에 빠졌나


옥시와 애경은 조정위에 다시 돌아가는 조건으로 세 가지를 내걸고 있다. 첫째는 합리적인 조정 기준 설정, 둘째는 기업간 공정한 분담 비율, 셋째는 피해구제의 종국적인 해결(종국성)이다.


자신들이 내야 할 분담금이 많고, 조정이 이뤄지면 더는 기업에 책임을 묻지 말라는 것이 이들 두 기업의 요구사항이다. 조정안 대로 지원금을 냈는데, 나중에 소송이 제기되면 어떡하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조정 이후 새로운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지난 6일 조정위는 활동 기한을 연장한다고 밝혔지만, 옥시와 애경은 여전히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정애 전 환경부 장관은 지난 4일 퇴임 전 기자간담회에서 국회에서 종국성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새로운 피해자는 국가가 책임지는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국회와 새 정부의 역할을 촉구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가습기살균제와 관련한 청문회를 열 방침이다.


990243693_pSRPuQLB_ecd32ad4bbcd0ba730600d56650b6533526ef08b.jpg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alt="2016년 5월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왼쪽)과 활동가들이 4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이마트 용산점의 옥시 제품 진열장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일으킨 옥시 제품 판매 금지를 촉구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style="border: 0px; margin: 0px; padding: 0px; width: 640px;">
2016년 5월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왼쪽)과 활동가들이 4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이마트 용산점의 옥시 제품 진열장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일으킨 옥시 제품 판매 금지를 촉구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피해자들 상당수는 조정안도 불만족스러운데 종국성에 대해선 논의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이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지금도 피해자의 절반가량은 조정안에 만족하지 못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이다. 가령 피해자의 70~80%가 조정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면, 종국성 문제도 얘기해 볼 수 있을텐데, 배·보상 수준을 낮게 만들어놓고 종국성까지 내거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기업간 분담 비율이 공정치 못하다는 두 기업의 주장을 두고서도 피해자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에 따른 분담 비율을 조정안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옥시와 애경의 조정위 불참에 대해 최대한 자신들의 경제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전략적 행동으로 보고 있다 .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문제는 당분간 냉각기를 거친 뒤 재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최대 변수다. 안식 조정위 사무국장은 11일 “올해 안에 피해구제 분담금이 소진된다. 다시 가습기살균제 기업들에게 법에 따른 추가분담금을 걷어야 한다”고 말했다. 옥시와 애경이 대화의 장에 나오라는 압박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가습기 사태는 세계 최초의 ‘바이오사이드’


가습기살균제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구제를 신청한 피해자는 7600여명이고, 사망자는 1700여명이다. 실제 피해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사태는 세계 최초로 대규모 살상자를 낸 ‘바이오사이드’(biocide·생명학살)다.


2011년 준식이 엄마에 대한 기사를 쓰고 몇 년 뒤, 최예용 소장에게 전화가 왔다. 준식이 엄마한테 연락이 왔는데, 기사에 실린 유골함 사진을 기사에서 빼달라는 것이었다. 엄마가 준식이를 결국 놓아주었는지, 아니면 기사에 담긴 사진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그러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아이가 자는 방 가습기에 살균제를 넣었던 엄마는 아마도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괴로워 할 것만은 분명하다. 엄마가 아이를 편안하게 떠나보낼 수 있는 그날이 오길 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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