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아이 얼굴에 가까이... 죄책감에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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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아이 얼굴에 가까이... 죄책감에 괴로웠다"

최예용 0 9371

[현장]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대회 및 추모제 열려

오마이뉴스 2013년 9월1일, 베이비뉴스 정가영기자

8월 31일 토요일 오후 한산한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마스크를 쓰거나 산소호흡기를 꽂은 이들, 혼자 걷는 게 힘들어 다른 사람의 손에 의지해 힘겹게 발걸음을 내딛는 이들, 바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이 이날 국회를 찾은 이유는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서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 몇몇 국회의원 등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대회 및 추모제'를 마련했다.

정부는 2년 전 이날 임산부, 아이 등에게서 잇따라 발생한 원인미상의 폐질환 원인이 가습기살균제라는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정부가 직접 동물실험을 진행한 결과를 토대로 가습기살균제의 독성이 임산부, 아이 등의 목숨을 앗아간 원인이었다고 공식 인정한 것이다.

현재까지 접수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사례는 총 401건, 이중 무려 127명이 목숨을 잃었다. 겨우 목숨을 건진 이들은 가습기살균제 제조 및 판매 기업이나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살아왔다.

최근 들어서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법률 제정이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고,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게 의료비를 지원하겠다고 방침을 정했다. 이렇듯 뒤늦게 정부와 국회가 피해자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리긴 부족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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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김기두 박현서 씨 부부가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대회 및 추모제에서 두 자녀를 품에 안고 헌화하고 있다. 부부는 지난 2011년 6월 11일 생후 28개월 된 첫 딸 하은이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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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대회 및 추모제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헌화한 후 슬픔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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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대회 및 추모제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고인의 넋을 기리며 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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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때문에 사망, 상상도 못해"

이날 추모제 참석자들은 정부와 가습기살균제 제조 및 판매 기업으로부터 어떠한 사과도, 보상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127명의 안타까운 영혼을 위로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추모 단상으로 나와 국화꽃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숙였다. 한 송이, 한 송이 국화꽃이 쌓여갈 때마다 참가자들의 흐느낌 소리는 더욱 커져갔다.

슈퍼와 마트에서 파는 몇 천 원짜리 가습기살균제를 사서 사용했을 뿐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아이와 아내를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 이들,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건강이 악화돼 직장을 잃고 수억 원에 달하는 병원비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 어느 하나 안타깝지 않은 사연이 없다.

2006년 생후 24개월 된 아들 준호를 먼저 하늘로 보내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부은정(42)씨가 마이크를 들었다. 부씨는 "감기 때문에 가습기살균제를 매일 썼었는데, (가습기살균제를 넣은) 가습기를 아이 얼굴 가까이에 댔었는데···. 엄마인 내가 아이의 폐를 더 손상시켰구나 하는 죄책감에 너무나 괴로웠다"고 말했다.

이어 부씨는 아이가 떠난 후 아이의 사망 원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전했다. 황사 때문은 아닐까, 잦은 외출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지,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부씨는 아이를 떠나보내고 이틀 후에 쓴 일기장에는 "너와의 이별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고 너와의 추억에 그 소중한 것들로부터 엄마가 견딜 수 있을까"라며 "하늘나라에서 다시 엄마에게 태어나렴. 제발 엄마에게 다시 태어나렴. 사랑한다. 미안하고 사랑한다. 영원한 아들아. 엄마, 아빠 잊지마"라고 적었다고.

그렇게 아이를 보낸 뒤, "아픔을 파헤치기 싫어서, 정말 괴로워서 가습기살균제 뉴스를 봐도 회피하며 살아왔다"는 구씨. 그는 "모른 척 하며 살아온 게 이제는 죄송스러울 뿐이다. 더 이상의 피해자가 없었으면 한다"고 눈물을 흘렸다. 부씨의 고백에 이날 행사장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됐다.

이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정부와 가해기업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실질적인 피해자 대책을 촉구했다. 정부와 사회를 향한 선언문을 낭독할 때 단상으로 모두 나와서는 '내 아이와 내 아내가 하늘에서 보고 있다', '살인 가해기업은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사죄하라' 등의 메시지가 적힌 피켓을 들어보였다.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서 "가습기살균제는 생활용품점에서 소비자라면 누구나 손쉽게 구입해 사용할 수 있었던 제품으로 정부가 허가했고 기업이 생산해 시판했다. 그런데 소중한 가족의 건강을 위해 사용한 제품이 살인제품으로 둔갑했다"며 "정부와 기업은 분명하게 책임을 지고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피해자들이 겪는 불안에 대해 필요하면 언제라도 의료적 지원 등 제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상설적인 지원기관이나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피해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우리사회에서 발생되지 않도록 교훈을 새겨야 한다"고 울부짖었다.

이밖에도 이들은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책임을 규명하고, 국회는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을 제정해야 하고, 가습기살균제 피해재발대책을 철저하게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앞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가습기살균제 피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매년 8월 31일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대회의 날'로 삼아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유명할 달리한 이들을 추모하고 정부와 사회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대책을 촉구하기로 했다.

이날 추모제에 참석한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가 주도적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상처와 고통, 상실감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실효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도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을 발의한 분들과 함께 반드시 가습기살균제피해자들에게 국가가 책임 있고 아픔에 상응하는 대책으로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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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대회 및 추모제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정부와 가해기업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공식 사과하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와 지원을 위해 상설기구를 설치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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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대회 및 추모제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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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이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대회 및 추모제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사태, 대통령이 사과하라'는 펼침막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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