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가습기 살균제 참사, 원인 규명 제대로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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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가습기 살균제 참사, 원인 규명 제대로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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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욱 ㅣ 한국방송통신대 보건환경학과 교수


한겨레신문 2021년 1월 12일자 

사회적 참사 특별법이 개정됐다. 개정 골자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의 진상 규명과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활동 기한 연장과 공소시효정지 등이다. 유독 가습기 살균제 참사(이하 참사)의 원인 규명 부분만이 개정에서 배제되었다.

원인은 영향(결과)을 초래한 과학적 증거다. 영향의 종류와 수준에 따라 원인은 단순한 사실부터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구조까지 다양하다. 참사의 원인을 특정 가습기 살균제 제품 또는 일부 살균제 성분이라고 단정한다면 지나친 단순화다. 마치 화재의 원인을 불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이 정도의 기초 사실은 이미 2011년 참사가 처음 드러났을 때 밝혀졌다.

참사를 초래한 많은 원인들 중 기업과 관련된 내용은 제품 개발과 판매 과정에서의 위험에 대한 인식과 통제 책임 수준이다. 정부를 상대로 밝혀야 할 내용은 제품허가는 물론 제품을 사용할 때 발생한 질환들을 감시하는 법적, 제도적 결함이다. 기업의 의도적, 비의도적 위험 제품 개발부터 참사가 될 때까지 매년 누적된 건강피해를 알지 못한 정부의 질병 감시 체계의 실패까지 드러내야 할 원인들이다. 이와 같은 원인 규명의 목표에 대입해보면 현재까지 밝혀진 참사의 원인은 턱없이 부족하다. 밝혀야 할 것이 여전히 많다.


첫째, 참사의 직접적 원인인 가습기 살균제 제품 수, 기업의 살균제 성분과 농도 관리, 제품별 판매량 등 기초 사실도 정리되지 않았다. 심지어 피해자들이 사용했던 제품과 살균제 성분 등에 대한 국가 통계도 볼 수가 없다. 사실 확인을 위해 기울인 노력도 부족했다. 2011년 참사가 드러난 지 한참 지난 2016년에 환경부가 29개 제품 제조 기업을 면담 조사한 것이 유일하다. 개인의 피해 연관은 물론 민사, 형사상 피해 원인을 증명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근거가 여전히 빈약한 상태다.

둘째, 46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판매한 기업의 제품 개발, 하청, 위험 관리 등 건강 위험을 시장에 외부화한 과정도 정리되지 않았다. 이 제품들은 모두 크고 작은 건강 위험을 사회로 방치하면서 경제활동을 했다. 제품별로 사회에 끼친 위험을 평가한 적이 없다.

셋째, 가장 많은 건강피해를 일으킨 살균제 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에 대한 위험 특성도 제대로 밝힌 것이 없다. 연구에 따르면 PHMG는 기업에서 말한 거대분자가 아니고 분자량이 훨씬 작고 독성은 더 큰 올리고머다. 기업의 PHMG 제품 개발, 제조, 하청, 위험 관리 등 조사를 통해 PHMG 위험 관리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험한 제품 생산을 사전에 차단하고 시장에서 발생되는 건강영향을 모니터링해서 확산을 막아야 할 정부의 책임 소재도 규명해야 한다. 정부는 유례가 없었던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허가했고 2011년까지 10년 넘게 건강피해가 집단적으로 발생하고 참사에 이르기까지 만연했던 살균제 건강피해를 알아채지 못했다. 화학물질 중독 감시 체계의 심각한 결함이다.

현재 가습기 살균제 피해 질환은 폐 손상, 천식, 태아 피해 등 몇개에 불과하지만 향후 전신 질환, 살균제 노출로 손상된 세포의 돌연변이로 인한 암 발생 가능성 등 가습기 살균제 피해 범위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태아, 어린이 피해자의 성장 후 잠재적 질환 위험까지 고려한다면 피해 규모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드러난 지 10년이 지나 원인을 증명할 증거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더 늦기 전에 참사의 원인에 대해 규명한 것, 규명해야 할 것 그리고 규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정리해보자. 참사 원인에 대한 내용과 깊이는 피해 질환 결정, 피해자 지원과 보상, 개인 피해 인과 관계 증명, 민형사상 쟁송 증거 등 참사 해결의 수준과 깊은 연관이 있다. 


원인을 제대로 밝혀야 유사한 화학물질 사고를 막을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앞으로 가습기 살균제 참사 원인과 참사 해결을 위한 활동은 따로 분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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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건시민센터 박동욱 운영위원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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