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자전거캠페인4일차] 군산->무안, 새만금에서 '상전벽해'란

[SOS자전거캠페인4일차] 군산->무안, 새만금에서 '상전벽해'란

최예용 0 3542

새만금에서 '상전벽해'란 다른 뜻으로 쓰인다

[SOS자전거캠페인③] 4일차 - 8월 15일, 군산에서 무안으로
최예용(choiye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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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공단안에 위치한 '청정원' 대상공장 앞에서의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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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상제품을 들고 있는 군산지역 시민단체 '군산시민의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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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원' 대상공장 앞에서의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하루 전에 우리가 군산시내 마트에서 구입한 청정원 제품들을 들었다. 공장 측은 입구에 있는 회사 홍보 입간판에 하얀 천을 씌워놨다. 동행자 영환이 말했다.

"아니, 뭐가 창피해서 그러지? 손으로 하늘을 가리네."

단일공장으로 한국에서 가장 해양투기를 많이 하는 사업장, 바로 미원을 만드는 '청정원' 군산공장이다(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위원회 소속 김춘진 의원이 공개한 '2012년 산업폐수 및 폐수오니 해양투기 위탁현황' 자료에 근거).

이번 '산업폐수 해양투기 연장반대' 자전거 전국캠페인 일정을 짜면서 내심 기대한 코스는 금강·영산강 그리고 낙동강의 4대강 자전거길과 새만금 방조제길이었다. 한강 자전거길은 일부지만 자전거로 가봤고 다른 3개 강은 자전거로 다녀볼 기회가 없었다. 새만금 방조제길은 갯벌보호운동차 몇 차례 그리고 완공 직후인 2009년 차량통행을 통제할 때 지나가봤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였다. 아버지와 단둘이 같이 자면서 여행을 다닌 게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당시 전국의 주요 염전지역 소금창고의 슬레이트 지붕 석면 문제를 조사하러다니던 때였는데 전북 곰소의 염전을 가보려고 계획을 짜다가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동행하셨다.

아버지의 고향은 새만금 한가운데인 전북 김제군 만경면 진봉리. 새만금 방조제위에서 아버지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에 크게 놀라셨다. '뽕나무 밭이 변해 푸른 바다가 된다'는 뜻의 상전벽해지만 새만금 방조제길에서는 '푸른바다 위에 33km의 길고 거대한 방조제와 4차선 도로가 놓였다'는 뜻으로 바다가 땅으로 바뀌었다. 새만금 간척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아들을 의식해 "이런 짓들을 하다니"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동안 소외돼온 전북지역이 새만금 간척으로 크게 발전하리라는 일반적인 전북도민의 기대감이 아버지에게서도 은연 중에 느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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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지역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세계적기술' 새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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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만금 방조제위 군산과 신시도 사이에 있는 고래꼬리 전망대. 새만금 갯벌에서 엄청난 크기의 고래 척추뼈가 발견된 적이 있지만 새만금간척과 오염으로 새만금일대에서 대형고래는 사라지고 없다. 참돌고래과에 속하는 상괭이라 불리는 작은 고래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긴 하는데 새만금완공후 민물화되면서 물이 얼어 상괭이들이 떼로 얼어죽은 사건이 있었다. 오른쪽은 새만금 바깥쪽 바다다
ⓒ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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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시기 전에 장지를 어디로 할지 논의할 때 모두들 서울 사는 곳 가까이 모셔야 자주 찾아 뵙는다는 의견에 동의하시면서도 김제 고향땅으로 가고 싶은 생각을 내비치신 바 있었다. 새만금 방조제 가운데 신시도 휴게소에서 멀리 만경땅을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친지와 선조들에게 안부를 전했다.  

"새만금을 간척해 농경지를 확보한다더니 공장유치도 힘들고 택지개발은 더 어려운 상황"이며 "돈을 엄청나게 쏟아부어도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군산시민의힘 김능규 사무처장이 말했다. 우려했던대로 결국 새만금간척이 전북지역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새만금 안쪽에 위치해 철새 도래지로 유명했던 옥구염전은 지금은 모두 사라졌단다. 대신 그 자리에 골프장이 들어섰다고 한다. 참여정부때 유시민 당시 해양수산부장관이 새만금지역에 골프장 수십 개를 유치하자는 발언을 해 환경운동가들의 공분을 산 바 있었다. 결국은 그렇게 되는 구나. 생명의 원천인 갯벌을 막고, 염전을 폐쇄해 그 자리에 골프장을 만들다니….

새만금방조제길의 바닷바람은 세게 불어 시원했지만, 워낙 강한 햇빛 때문인지 쉽게 지쳤다. 신시도 휴게소에서는 나무의자 위에 드러누워 잠시 눈도 붙였다. 부안쪽 방조제길에 이르러 부안시내 쪽으로 향했다. 새만금갯발보호운동 시절 지금은 여수에 정착한 최병수 작가가 해창갯벌에 세웠던 솟대들을 보려고 연신 갯벌 쪽을 살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모두 없애버린 듯했다. 새만금간척반대운동의 상징이었는데 아쉬웠다. 군산쪽도 그랬는데 부안쪽 방조제 안쪽의 갯벌에 물이 빠져 커다란 육지가 생겨나고 있었다. '바다가 육지라면'이라는 사랑노래가 있었는데 새만금에서의 이 노래는 전라도 소외정서를 등에 업은 반환경개발주의의 퇴락한 곡조가 됐다.

방조제를 벗어나 부안시내로 향하는 18km는 매우 힘들었다. 국도아스팔트가 도로표면은 나쁘지 않았지만 언덕을 여러 개 지나야 했고 나는 헐떡였다. 새만금방조제길 33km를 달린 뒤였다. 자꾸 쳐지니까 영환이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나중에 영환은 새만금방조제길보다 국도길이 더 편했다고 한다.

부안시내에 도착하니 이미 오후 5시를 넘기고 있었다. 당초 오늘 목적지는 광주였는데 며칠 전에 광주가 너무 머니까 조금 줄여서 영광까지 가기로 하고 영광에서는 생태공동체운동을 하는 황대권 선배가 있는 곳에서 하루 묵자고 의견을 모았다. 물론 연락도 취해놨다. 영환은 <야생초편지>의 저자를 만난다고 하니 사인을 받겠다며 좋아했다.

하지만 부안서 영광까지 자전거길은 65km 4시간 20분 거리. 실제로는 6시간이 족히 걸릴 거리다. 당연히(!) 버스축지법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영광까지는 버스 편이 아예 없다고 한다. 난감했다. 다음날 일정은 오후 2시에 목포해운항만청에서의 기자회견인데 부안은 목포에서 너무 먼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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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안에서 정읍까지의 버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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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이 황대권선배에게 전화로 사정을 알리고 다음에 보기로 했다. 아쉬웠다. 이제 축지법을 사용해 최대한 목포 가까운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광주로 가려하니 버스 편이 끊겼다며 정읍에서 갈아타란다. 서둘렀다. 버스축지법은 처음이었는데 고속버스와 달리 시외버스는 짐칸이 작아 자전거가 안들어갔다. 버스기사가 손님이 없으니 자전거 한 대는 차안으로 들고가서 통로에 놓으라고 한다.

영환의 자전거는 앞바퀴를 풀어 빼고 짐칸에 실었다. 처음 해보는 거였지만 어렵지 안더란다. 그렇게 30여 분 이동해 도착한 정읍. 공휴일이고 날이 어두워져서인지 정읍터미널은 한산했다. 광주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나주까지는 가야 했다. 안그러면 광주에서 목포까지 96km를 이동해 오후 2시 전에 도착해야 하는데 그건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당초 계획은 광주서 오전 6시께 출발하는 것이었지만 자전거캠페인 4일 차인 우리는 그러한 계획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광주행 버스시간이 남아 일단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자전거로 터미널 부근을 배회하다 문득 생각이 났다. '아, 기차가 있다. 나주까지 바로 갈 수 있어!' 한달음에 정읍역으로 갔다. 무궁화호로 나주까지 45분정도 밖에 안 걸렸다. 95km를 한 시간도 채 안걸려 이동해주는 '무궁화 축지법', 대단했다.

맥주까지 한잔 하며 여유있게 저녁을 먹고 기차에 올랐다. 우리의 무궁화호, 자전거 거치공간까지 갖추고 있었다. 잠시 눈을 붙이려는데 문득 '나주에서 목포까지는 얼마나 걸리지?'라는 생각에 네이버를 찾아 보니 67km나 된다. '아니야, 이것도 넘 무리야. 더 줄여야 해' 우리는 나주역을 지나 무안역에 내렸다. 그렇게 목포까지 가야할 거리를 27km나 줄였다. '후유, 큰일날뻔 했네' 무안역에 내리며 우리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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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읍에서 무안까지의 기차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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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했다. 밤하늘에 별이 반짝였다. 북두칠성이 보이는 듯도 했다. 영환이 말했다. "드디어 우리가 야간 라이딩을 하네요."

"야~ 밤에 타니까 시원하고 좋다!"
"그러게요, 벌레소리가 듣기 좋아요."
"근데 왜 아무것도 안보이냐? 숙소를 어디서 잡지?"

마침 같이 내린 사람에게 물었더니 저쪽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된단다. 그날 밤 우리는 숙소를 찾아 고개를 세 개나 넘었고, 오후 10시 34분에 무안 시내 숙소에 들었다. 축지법은 공짜가 절대 아니었다. SOS자전거 캠페인 4일 차 군산숙소에서 8시 30분에 나와 14시간만에 무안숙소에 들었다. 땀으로 범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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