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돌이, 살아있는 먹이 사냥하고 장난치며 ‘돌고래 본능’ 회복

제돌이, 살아있는 먹이 사냥하고 장난치며 ‘돌고래 본능’ 회복

최예용 0 4050

경향신문 2013년 6월22일자

ㆍ[르포]제주 성산항 가두리 양식장의 야생 환경서 춘삼이·삼팔이와 함께 바다 적응 훈련… 다음달 방류작업 순조

“저기 보세요. 제돌이가 고등어를 물고 돌아다니면서 장난치고 있네요.”

지난 20일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는 제주도 성산항 앞바다의 가두리 양식장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서울대공원에서 사육하다 방류하기로 해 제주도로 온 지 41일째 되는 날이다. 바다 방류는 다음달로 다가왔다. 제돌이는 차근차근 자연으로 돌아갈 적응 훈련을 하는 중이다. 제돌이, 그리고 제돌이와 함께 방류될 춘삼이와 삼팔이는 수족관에 있을 때와 눈에 띄게 달라져 활기찬 모습이었다. 제돌이가 제주도에 온 뒤 언론에는 처음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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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20일 제주 성산항 인근의 가두리양식장에서 야생적응훈련을 하다가 서울대공원에서 파견 와 있는 사육사와 눈을 맞추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 사육사·제주대·이대 연구진이 밤낮으로 보호

밤낮으로 가두리 속 돌고래 세 마리를 돌보며 관찰해온 연구자와 사육사들의 도움을 받아 내내 눈이 제돌이·춘삼이·삼팔이를 따라갔다. 등지느러미에
인식표가 붙어 있어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제돌이와 달리 춘삼이와 삼팔이는 꽤 오랜 시간 관찰해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연구원들이 힌트를 준 다음에야 둘 중 비교적 흰색인 돌고래가 삼팔이, 약간 짙은 색에 등지느러미에 파인 자리가 있는 돌고래가 춘삼이인 것을 알게 됐다. 연구원들은 세 마리의 돌고래가 수족관에서는 할 수 없었던 새로운 행동을 선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말 서울대공원에 있을 때부터 제돌이를 관찰해온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장수진 연구원은 “살아있는 먹이를 줄 때 사냥하는 모습이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서울대공원에서는 살아있는 먹이를 줘도 직선으로만 움직이려 하고, 속도를 내기 전에 심호흡하고 물속에 들어갔다. 준비동작이 많았던 제돌이다. 하지만 가두리에 온 뒤로는 빠르게 방향을 돌리거나 배를 위로 보이고 수영하기도 하며 새로운 사냥기술을 습득했다는 것이다. 연구원들은 “돌고래들 모두 조금씩 좋아지고 있고, 제돌이의 경우 6월에 접어들면서 확연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연구원들이
차양막 뒤에 숨어 살아있는 고등어와 전갱이 등을 던져주자 돌고래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빨라지기 시작했다. 돌고래들은 가두리 양식장 곳곳을 누비며 도망가는 물고기들을 잡아먹었다. 바다 표면에 떠 있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배영을 하다 몸을 뒤집어 사냥하는 민첩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돌고래들은 기절하거나 죽은 물고기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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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성산항 인근 가두리양식장에서 야생적응훈련을 받고 있는 삼팔이가 지난 20일 가두리로 들어온 물고기를 코로 받으며 장난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 수족관서 볼 수 없던 ‘놀이’ 등 새로운 행동

수족관에서 편하게 죽은 먹이만 받아먹던 것보다 사냥해서 먹는 것을 즐기게 된 셈이다. 제돌이 방류 책임자인 제주대 해양과학대 김병엽 교수는 “돌고래들은
초음파를 쏴서 먹이를 확인하고 사냥을 하는데 살아있는 먹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말했다. 춘삼이는 수족관에서 한쪽 방향으로만 헤엄친 탓에 한쪽으로 휘었던 등지느러미가 서서히 펴지고 있는 것도 관찰됐다.

배가 부를 만큼 먹이를 먹고나자 돌고래들은 물고기를 물고 돌아다니는 ‘놀이’를 시작했다. 특히 제돌이는 고등어 머리를 물고 한참을 돌아다녔다. 역시 수족관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광경이다. 한참 지켜보면서 새로운 것도 느꼈다. 돌고래마다 좋아하는 ‘놀이’가 달랐다. 춘삼이는 주로 작은 물고기를 잡아서 물고 다니며 집어던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오전에 춘삼이는 노란색 거북복 한 마리를 잡아 캐치볼을 하듯 삼팔이에게 던지며 장난을 걸었다. 춘삼이는 거북복을 물고 다니다 놔줬다가 다시 잡아서 물고 다니기를 반복했다.삼팔이는 주로 해조류를 지느러미에 걸치고 다니며 노는 것을 선호한다고 연구원들이 귀띔했다. 장 연구원은 “관찰 결과 돌고래들이 처음에는 지느러미에 걸고 놀다가 입에도 걸어보는 등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놀이 방식을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고기를 물고 다니다 집어던진 후 쫓아가거나 물속에 가라앉게 한 후 지켜보는 것도 돌고래들이 즐기는 놀이였다.

대법원이 제주퍼시픽랜드에서 몰수하도록 결정을 내린 후 지난 4월8일 먼저 가두리에 온 춘삼이·삼팔이와 달리 제돌이는 한 달여 늦게 훈련을 시작한 탓에 물 위에 고개를 내밀고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연구원들은 제돌이가 돌고래쇼를 그만둔 후 살이 붙어 춘삼이와 삼팔이만큼 활발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날도 제돌이는 춘삼이·삼팔이와 한 줄로 헤엄치며 어울리다가도 멀리 사람들이 보이는 방향으로 고개를 내밀고 쉬는 모습을 보였다.

■ 도망가는 물고기 잡아먹을 만큼 몸짓·수영 빨라져

제돌이와 춘삼이, 삼팔이가 처음부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춘삼이와 삼팔이는 처음에 잔뜩 겁을 먹고 꼭 붙어다니면서 처음 풀어준 장소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다. 장 연구원은 “가두리 전체를 돌아다니는 데는 일주일 이상이 걸렸다”며 “둘이 장난치며 노는 모습도 1~2주 지나면서부터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물 밖에 나와서 숨쉬고 다시 들어가는 단순한 행동만 반복했다”고 덧붙였다. 아무것도 없는 가두리에 들어갔던 춘삼이·삼팔이와 달리 제돌이는 이미 다른 돌고래가 있는 상태에서 가두리에 들어와 크게 불안해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제돌이가 훈련받고 있는 가두리 양식장은 직경 30m에 수심 6~7m다. 하루에도 수십~수백㎞를 헤엄치는 돌고래에게는 좁디좁은 공간이지만 바닥의 자연 암반 등은 야생과 거의 비슷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대공원에서 파견온 사육사와 제주대·이화여대 연구진 등 3개팀 7명이 밤낮으로 교대하며 돌고래들을 지켜보고 보호하고 있다. 돌고래들의 보호와 자연적응을 위해 가두리 양식장은 관계자 외에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돌고래를 방류하는 뜻깊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이었지만 열악했다. 돌고래가 좋아서, 동물 연구가 좋아서 뛰어든 연구원들이 아니면 버티기 힘든 환경이었다. 연구원들은 최근
차양막을 설치하기 전에는 뙤약볕과 장대비를 그대로 맞아야 했다. 돌아가면서 밤을 지새다보니 체력도 바닥이 났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불법포획된 돌고래를 처음 방류하는 과정에 참여한다는 자부심이 크다. 장 연구원은 “외국의 경우 돌고래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10~20년 축적된 자료를 갖고 있는데 우리는 돌고래에 대한 생태학적 정보가 거의 없다”면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하는 연구이기 때문에 즐거워서 힘든 줄도 모르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방류를 계기로 다른 해양동물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방류 매뉴얼을 만들 수 있었으면 하는 게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 아시아 최초 남방큰돌고래 방류 뜻 깊어

앞으로 제돌이는 제주 성산항 인근 방파제 안쪽의 가두리 양식장에서 김녕 앞바다의 가두리로 옮겨 새로운 훈련을 받게 된다. 당초 이송 날짜는 20일로 잡혀 있었지만 제주도 남쪽에서 북상하는 태풍으로 인해 6월 말로 연기됐다. 김녕의 가두리 양식장으로 돌고래들을 옮기는 것은 먼바다에서 오는 파도를 그대로 받아 한 발 더 자연에 가까운 환경을 접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녕은 남방큰돌고래 무리들이 빈번하게 지나가는 지역이어서 돌고래 무리가 지나갈 때 세 마리의 방류 시점을 잡아 다른 돌고래들과 쉽게 접하도록 하는 이점도 있다.

이송 후에는 제돌이 방류 시민위원회가 돌고래 세 마리의 방류가 적합한지를 두고 행동생태 평가와
건강검진 등을 다각도로 한 후 방류 날짜를 결정하게 된다. 제돌이 방류 시민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장이권 교수는 “제돌이, 삼팔이, 춘삼이 모두 방류에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특히 제돌이는 방류에 무척 적합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다음달 중으로 돌고래들을 방류할 방침이다. 방류 날짜가 7월 중이라는 것 말고는 아직 초순이 될지, 하순이 될지 알 수 없는 이유는 제주의 변화무쌍한 기상 때문이다. 김병엽 교수는 “기상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방류 날짜가 언제라고 장담하기 어렵다”며 “돌고래 방류에 문제가 없다는 결정이 나오면 기상 조건에 따라 방류 날짜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 연구원은 “돌고래들 모두 가두리에 오기 전보다는 먹이를 사냥하고 활발히 움직이면서 다소 살이 빠진 상태”라며 “방류 직전에는 방류 후 먹이를 바로 사냥하지 못해도 버틸 수 있도록 지방층을 축적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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